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되니츠 (문단 편집) ==== 해군 총사령관 ==== [[에리히 레더]] 제독이 [[비스마르크급 전함|비스마르크]] [[비스마르크 추격전|격침]] 등 [[해군]] 운용에 대해 히틀러와 갈등을 빚어 해군 총사령관에서 스스로 사임을 한 후 그의 뒤를 이어서 해군 총사령관에 취임했다. 레더 제독은 총사령관 후보로 수상전 전문가인 롤프 칼스 제독[* 1885.5.29 ~ 1945.4.15. 최종 계급 상급대장. 기사 철십자 훈장 수훈자. [[스페인 내전]] 당시 독일 증기선을 정선시킨 스페인 군함에 맞서 출격한 [[도이칠란트급 장갑함|포켓 전함]] 전대의 지휘관으로, 전역 내내 강경한 지휘를 했다. 1943년 3월 1일까지 북부 해역 사령관을 맡았고, 총사령관 인선에서 탈락한 후 예비역이 되었다가 종전 전에 연합군 공습으로 사망했다.]과 되니츠 제독 두 사람을 추천했고 히틀러는 되니츠를 선택했다. [[계급 특진|이로써 해군 대장(Admiral) 계급이었던 되니츠는 상급대장(Generaladmiral)을 건너뛰어 곧바로 원수(Großadmiral)로 진급하였다.]] 히틀러는 유보트 함대 사령관인 그의 입김으로 대양함대를 해체하려 했지만, 정작 신임 해군 총사령관이 된 되니츠는 면밀히 검토 후, 자료를 들이대며 '''대형함들을 전부 해체해봤자 나오는 자원도 거의 없고, 해체하면서 돈과 인력만 낭비한다. 그러느니 그냥 이대로 [[현존함대|놔두기만 해도 연합군은 이들을 두려워 할 것]]'''이라고 설득하여 결국 대형함들을 지켜낸다. 실제로 이 말이 맞아서 대전 당시 노르웨이에 배치된 [[비스마르크급 전함]] 2번함인 [[티르피츠]]는 출항한다는 소문만으로 영국-소련간의 북극 항로의 수송 함대를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골칫거리가 되었다. 영국 입장에선 1번함 비스마르크에 의해 영국 해군의 상징이던 순양전함 후드가 격침되었던 경험이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었고, 미군 입장에서도 동부전선에서 히틀러를 상대로 어렵게 버티고 있던 소련을 그나마 빠르게 지원할 수 있던 항로가 위협받기 때문이었다. 이 때문에 대서양에 16인치 전함인 넬슨급 전함 로드니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메사추세츠, 기타 자유 프랑스 해군의 함정 등이 묶이는 등 여러 모로 연합국의 속을 박박 긁어댔다.[* 항해 중이던 영국 수송함대 [[PQ-17]]이 "티르피츠가 떴다!!"라는 이야기가 퍼지자 바로 산개했는데 얼마 안 가 [[유보트|잠수함]]들과 [[Ju87|슈투카]]들이 몰려들어 결국 각개격파당하며 먹이가 된 적 있다. 그런데 중요한 건 그때 티르피츠는 출항한 적 없었고 그냥 본진에 박혀 있었다. 되니츠의 말대로 대형함들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. 이후로도 티르피츠는 별다른 출항도 없이 이 항구 저 항구만을 전전했지만 영국군은 이 티르피츠 때문에 계속 긴장해야 했다.] 그렇지만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과 별개로 되니츠 제독이 그 이후에도 제일 관심을 쏟은 함선은 계속 그래왔듯이 그 이후에도 유보트였다. 보수적이고 나치즘과는 거리가 먼 해군에서 나치즘에 대해 이해를 보이는 등의 모습을 보여서인지[* 그의 전임자 [[에리히 레더]]는 나치를 싫어하였다. 다만 나치 정권의 해군 재건 계획은 강력하게 지지했다. 되니츠 이전의 해군이 나치즘과 거리를 두었던 건 전임자 레더의 성향을 고려하면 당연했던 것.] 히틀러의 신임을 받았으며 히틀러는 자살하기 전 정치적 유언으로 자신의 직위인 총통을 다시 나누어서 대통령과 총리로 분리시킨 후 되니츠를 차기 대통령 겸 전쟁장관으로 지명했다. 총리로는 [[파울 요제프 괴벨스]]를 지명했으나 괴벨스는 히틀러를 뒤따라 자살하여 사실상 되니츠의 단독정부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